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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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시작하자마자 김제 가족단 간첩 조작 사건부터 시작합니다.

참고로 김제 가족단 간첩 조작 사건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 8월 전북 김제에서 농사를 짓던 최을호씨가 16년 전 북한에 나포됐다 돌아온 뒤

조카인 최낙전·최낙교씨를 간첩으로 포섭해 국가기밀을 수집해 북한에 보고하는 등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입니다.

 

피해자들은 고문조작의 상징적 장소였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기술자’로 불리던 이근안 경감에게 40여일 동안 고문을 당했고,

그해 10월 서울지검 공안부 정형근 검사(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넘겨져 수사를 받았습니다.

그 후 1983년 3월 1심 재판부는 최을호씨에게 사형,

최낙전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고 항소와 상고는 차례로 기각됐습니다.

최낙교씨는 1982년 12월 검찰 조사를 받던 도중 구치소에서 사망해 공소기각 처분됐고,

당시 검찰은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유가족은 아직도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을호씨는 서대문구치소에서 복역하다 1985년 10월31일 사형,

최낙전씨는 9년을 복역한 뒤에도 보안관찰에 시달리다 석방된 지 4개월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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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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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조작된 간첩 활동 증거들

1. 국가 기밀인 마을 초소의 위치를 파악해 북한에 해적 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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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한 공작금 수령 및 조카 최낙교씨에게 전달

하지만 1000원권 수령 시기와 발급 시기 차이, 그리고 공작금 수령 장소인 비석이 세워진 시기와 사건 시기가 완전 불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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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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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 사진에 나온 이 조작 사건 경찰 중 한명은 그 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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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을호씨 조카인 최낙전씨는 9년 수감 생활 출소 후 아래와 같이 생활하다가 결국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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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팀이 피의자인 이근안씨 인터뷰 요청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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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팀은 이근안과 같이 근무했던 수사관과 다시 인터뷰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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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간첩조작사건인 2차 진도가족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들 인터뷰 

참고로 2차 진도가족간첩단 사건이란 1981년 7월 31일, 국가안전기획부가

진도에서 24년 동안 북한에서 내려온 '박영준(60)'이라는 간첩에게 포섭되어

7명이 간첩활동을 해 왔다고 발표한 사건입니다.

이 일로 박영준의 첫째아들이었던 '박동운(36)'과 친동생인 '박경준(48)'은 간첩 혐의로,

둘째아들 '박근홍(34)'과 아내인 '이수례(57)'는 간첩방조로,

매제인 '허현(43)'은 불고지죄로 각각 구속,

그리고 여동생 박미심(39)과 경준의 아내인 '한등자(41)'는 불고지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됩니다.

그리고 고문으로 인한 거짓 자백으로 조작된 혐의로 최종적으로

박동운은 16년, 박경준은 7년, 이수례는 4년, 박근홍은 3년 6개월, 허현은 1년을 감옥에서 살다 나왔고,

출소 후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가족들한테 외면당했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박동운의 경우에는 아내와 이혼까지 했고,

다른 피해자들의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고 사건 피해자 중 하나였던

박경준은 1998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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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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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들을 처벌하려 해도 가해자에 대한 정보가 없음. 또는 공소시효 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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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재일교포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 인터뷰

재일교포 간첩조작사건이란 1975년 11월 22일 박정희 정권 하에서 신임받던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 국장이었던 김기춘이

'북괴의 지령에 따라 모국 유학생을 가장하여 국내에 잠입, 암약해 오던 북괴 간첩 일당 21명을 검거하였다.'고

직접 언론에 밝힌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재일동포 10여명을 포함, 21명이 간첩으로 구속, 수감된 후

대부분 중형 혹은 사형을 받아 장기간 구속 수감 후 일본으로 추방되거나 하는 등의 고초를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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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후 취조 보안사 수사관들은 포상금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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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에서 근무한 한 목격자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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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시 교도관이 법정에서 검사 폭행을 증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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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론은 김양기씨에게 징역 7년 판결. 수감 후 재심 심청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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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검수사부장, 서울지검장, 그리고 전 한나라당 의원을 역임한 안강민 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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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중 건설회사 사외이사까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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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팀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아흔 다섯건을 담당한 판검사의 이후 이력을 분석했고,

아래와 같이 고위법관, 국회의원, 정치인으로 잘 나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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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검사는 3선 국회의원(한나라당)이자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었던 정형근 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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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선 의원(한나라당)이자 부총리였던 항우여 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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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재일동포 간첩조작사건으로 돌아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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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그는 그알팀과 인터뷰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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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들은 나중에 승승장구하고 피해자들은 피해를 입고도 계속 숨어지냈던 것들이 너무 대조됩니다.

그리고 그 어느 가해자들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보니 너무 심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방송을 보며 과연 정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가해자들은 처벌하기가 힘들겠지만, 최소한 피해자들에게는 보상해 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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