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도게자를 한 일본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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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유키오(일본의 민주당 정치인이자 제93대 내각총리대신)

민주당 소속으로 일본 역사상 최초의 단독 정당의 수평적 정권교대를 실현한 주인공이며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는 단독 정당으로서는

사상 최다 의석인 308석을 기록하면서 대승을 기록한 주역.

참고로 할아버지는 하토야마 이치로 자민당 결성의 맴버였다.

즉 할아버지가 만든 자민당 일당 독재를 손자가 완전히 끝장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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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 당시 일본은 젊은층 위주로 자민당 1당체제에 반감이 심화되었고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 민주당을 밀어주며 2009년 정권교체를 이뤄낸다.

당시 민주당 대표인 하토야마는 한,중,일이 유럽과 같은 평화적 협력국가가 되길 원하였고

때문에 이전 총리와 달리 야스쿠니도 방문하지 않았으며 군국주의를 경계하였다.

하지만 미군기지이전문제와 정치스캔들, 중국과의 희토류 문제등으로 물러나게되고 

이후 민주당 내의 계승자인 "간 나오토" 총리가 바통을 이여 받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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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약 16,000명 실종자 약 2,500명 후쿠시마 원전폭발을 발생시킨 동일본 대지진)

임기내 최악의 재앙이라는 동일본대지진을 겪게된다.

당시 자민당은 제대로 대처를 못했다며 "무능"이라는 프레임으로 민주당을 총공세하였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원전 민영화가 된 것은 자민당시절이였지만

원전관리책임까지 민주당이 전부 뒤집어 쓰는 형태가 되었음)

자민당 우익세력에선 "강한 일본"이란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나온 아베가 강한 인기를 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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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민주당은 무능이라는 프레임과 중국의 희토류사태와

이명박대통령의 갑작스런 독도방문 등으로 오히려 외교관계가 더욱 악화된 현실,

그리고 동일본대지진이후 절명적인 일본의 분위기를 바꿀 강한 지도자를 일본국민들이 원하였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양보하는 모습만 보이는 민주당을 철저히 외면하였다.

그 밑바탕엔 당시 민주당을 열열히 지지했던 일본 2~30대가 동일본사태 이후

급격하게 보수화되어 현재 아베 지지율을 굳건히 받쳐주는 3~40대의 신보수세력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보수적인 일본국민들은 구관이 명관이라는 프레임 그대로 다시 자민당으로 돌아왔으며

자민당 콘크리트는 더욱 단단해지고 민주당은 현재까지 한자릿수 지지율로 회생이 불가능한 수준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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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 기념비에 방문하여 사과하는 하토야마 전 총리)

하지만 퇴임이후 하토야마 총리는 더욱 이슈가 되었다.

중국에 방문하여 난징대학살을 사죄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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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하여 헌화를 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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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서대문형무소 추모비 앞에서 "도게자"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진은 일본을 발칵 뒤집었으며 당시 한일관계가 좋지않아 일본의 상당한 비판여론에 직면하였다.

그가 총리였던 시절 한,중,일의 평화적 협력관계를 퇴임이후 이어가려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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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엔 아베의 역사관을 비판하며 위안부 할머니들 앞에서

"일본은 과거사의 피해자들이 ‘그만두어도 좋다’고 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1 Comments
lllll 09.21 20:04  
그런데도 아베찍는 원숭이들 수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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