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살던 동네에 간 안정환

토사장이놈 0 192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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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상도터널로 가자는 안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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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에서는 자주 볼수 없는 진지한 안느.. 왜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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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더욱 이해하기 위해 지금까지 피하던 과거를 한번 다시 방문하기로 결정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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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의 귀공자같은 외모를 보고 평탄한 삶을 살았다고 착각할수 있지만 사실 안정환은 흙수저 유년기를 보냈다. 

안느의 아버지는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유복자로 자랐다.

거기다 어머니도 부모역할을 거의 하지 않아서 안느의 성인 안은 외삼촌 호적으로 들어가 받은거다.

안느를 사실상 키웠던건 안느의 외할머니.

안느의 어머니는 훗날 안정환을 정말 힘들게 했는데 이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으니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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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아버지가 없이 자라서 후레자식이란 소리를 듣던 안느.

판자촌에서도 제일 못사는 판자집이 바로 안느의 집이었다.

초딩때부터 돈암동, 흑석동, 신길동, 부천, 수원 등 여기 저기 얹혀살면서

다른 아이들이 가족들 앞에서 재롱을 부릴때 안느는 친척들 눈치보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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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의 어린시절 일과:

배고파 돼지감자, 무, 가지, 배추 서리,

한강에서 굿판 따라다니며 음식들 얻어먹기,

과일트럭에서 밤에 몰래 과일 훔쳐먹기,

매일 같은 옷을 입어서 친구들이 물어보면 똑같은 옷 여러 벌이라고 둘러대고 어린 마음에 빨래 훔쳐서 옷 구하기,

삐라 모아서 파출소에서 학용품받아서 학교 친구들한테 싸게 팔거나 군부대에 가져다주고 군식량 얻기,

한강에서 불교신자들이 방생하는 거북이나 물고기 잡아서 수족관 아저씨들한테 다시 되팔기 등

지금 생각하면 불량(?)학생들 같은 행동을 안느는 생존을 위해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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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이 축구를 시작한 이유는 축구부 감독이 빵과 우유를 사준다고 꼬셔서.

당시 안느의 친구들은 고아원 출신, 편부모 가정 아이들 이런 친구들이었는데

다들 그 말을 듣고 축구부에 입부했다.

안느가 힘들었지만 버틸수 있던게 그런 환경에 있는 친구들끼리 서로를 의지하며 버틸수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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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서 살땐 학교 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몰래 학교 창고에서 잠을 자곤 했다.

11살 짜리가 창고에서 잠이라니..

형제들이 엄마한테 반찬가지고 징징거리고 게임 뭐 하는데 방해했다고 징징거리던 나이때

안느는 귀신 나올법한 학교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몰래 자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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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집에서 얹혀살때 훈련 끝나고 집에 가서 가장 먼저 하던건 문을 살짝 열고 부부싸움 하진 않나 체크. 

 

부부싸움이 잦아지는 이모 부부의 집에 살면서 최대한 눈에 띄지 말아야 했다.

남의 집 살이 하면서 눈치를 봐야 했고 만약 부부싸움중 이라면

밤 늦게까지 집에서 떨어져서 쪼그려 앉아 기다리다 이모부부가 잠 들고서야 집에 들어가곤 했다. 

 

중앙대와 가까이 살았어서 가끔 대학생 누나들이 그런 안느를 보고 안쓰러워서

먹을것을 주고 했을 정도로 어린 안느에겐 쉴곳도 먹을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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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지면 할머니한테 부탁해서 꿰매고 다시 신고를 반복.

안느의 사정을 딱하게 본 선생님이 축구화 사라고 천원을 주실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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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 그 신발가게가 있길 바랬던거 같은데 사라진걸 보고 씁쓸해하는 안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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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뛰어다니던 말썽쟁이가 이젠 아재가 되어서 돌아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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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엔 여전히 말썽쟁이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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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그렇게 먹고 싶던 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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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는 과일을 잘 깎는데 그 이유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시간나면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었기 때문이다.

신길동 나이트 클럽에서 웨이터 알바를 하기도 했고 지하철 5호선 목동역에서 막노동을 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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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TV도 없었기 때문에 외국이 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친구집가서 TV보면서야 외국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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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피하던 과거를 막상 마주하니 당시 힘들었던 감정들 보단 이젠 그냥 측은하고 추억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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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부모님이 촌지준다고 실력없어도 뛰는 아이들을 보며 이를 악물고 훈련했었던 안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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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 후 여러 명문 고등학교 축구부들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같이 축구하던 친구들을 다 대려가는 조건으로 한단계 낮은 급인 야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더 놀라운건 고등학교 졸업후에도 명문대들의 러브콜을 뒤로하고

친구들과 함께 입학하는 조건으로 다소 변방이라 할수있는 아주대를 택했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말은 안느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외모만 만화같은게 아니라 의리도 만화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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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교회 도움을 받을 정도로 가난했던 안느의 어릴적 소원은 할머니랑 함께 슈퍼마켓을 하는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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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에게 맞으며 축구했어서 학창시절엔 축구로 행복했던 기억이 없었다지만 그것또한 이젠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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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때 쯤에서야 축구가 내 길이구나 느끼고 그때부터 축구로 행복을 느끼고 프로에 대한 마음을 가졌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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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시절 일본가서 처음으로 오렌지를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할머니 드린다고 챙겼던 소년.

다른 선수들이 정환이 식탐있다 놀려도 할머니 드릴 생각에 그저 기뻤었던 그 소년이 이젠 자식을 둘이나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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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엄마는 부모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할머니가 없는 살림에 힘들게 키워주시고.

축구도 빵이랑 우유 준다 시작해서 학창시절 선배들의 폭력을 견디며 버티고

대학도 친구들 대리고 가는 조건으로 아주대로 진학.

거기서 프로라는 목표를 세우고 축구에서 행복을 처음 찾고 프로에 가니 엄마가 뒤늦게 나타나선..

그 후 페루자나 FC서울 팬의 욕 등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안느는 여전히 많은 축구팬들 기억속에 남은 레전드가 되었다.

 

안느가 조폭이나 나쁜길로 안 빠지고 올바르게 자란건 할머니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 틀림없다.

긴 글 봐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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