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산림 상태

구한말 산림 상태

72756480 0 38 0 0
31726472_7a1dd78f.png
"왜 이 나라가 이렇게 황폐한가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설명은 참으로 한국적이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내륙에서는 호랑이를 몰아내기 위해 숲을 불살랐고
언덕은 정상으로부터 토양이 씻겨 내려올 만큼 벗겨졌다는 것이다. -1898년 샌즈-


어떤 지역에서도 일본처럼 세심하게 가꾼 삼림지대는 눈에 띄지 않는다 - 새비리 랜도어-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조선 평양에 가보았습니다만,
당시 대단히 인상 깊었던 것은 부산에서 경성까지 오는 그 사이에
산이란 산에는 나무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헐벗은 거죠.
금강산도 알고 계신 바와 같이 뼈만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어요.
암석들은 대단히 뛰어났습니다만,
뼈가 드러나고 살이 전혀 붙어 있지 않는 그런 인상이었어요 - 미야타 쎄스코-


반도의 삼림은 고대에는 울창했지만 인구의 증가와 함께 개발이 진행된 현재에는,
인구가 심산유곡의 삼림 외에는 초생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또 수목의 남벌과 밑에 있는 시초의 채취가 극심한 결과,
산악이 뼈를 들어내고 노출된 것이 적지 않다.
가끔 수목이 있어도 적송의 치수 또는 왜소한 악목에 지나지 않다.
조금 임상이 볼만한 것이 있다면 금벌한 국유림 및 분묘의 주위에 있는 삼림 외에,
운반이 불편한 먼 벽지에 이르면 침엽수 단순림 또는 침활 혼효림이 있어서
천연림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 비율을 보면 임목지는 전체 임야의1/3로서 시초생지와 벌거벗은 산이 2/3에 이르른다

-1902년 일본 산림국 기사가 농상무성 지시로 4개월 간 조사하고 보고한 결과의 삼림의 개황 편-


조선의 산은 대부분 민둥산으로 수목(樹木)이 없으며 조금만 가물어도 수원(水源)이 바로 말랐다.이럴 때면 논밭이 갈라져 백성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높은 땅을 관개하는 데는 수차(水車)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뭄을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조선에는 수차가 없어 겨우 물통으로 물을 퍼 올렸기 때문에 그 불편함은 실로 말 할 길이 없었다.

가뭄이 계속되어 거의 수확(收穫)이 없을 때 조선인은 아녀자(兒女子)를 부잣집이나 중국인에게 팔아 노비(奴婢)로 만든 대가로 쌀과 보리를 구했다. 백성들은 흉년(凶年)과 기근(飢饉)으로 고통을 받자 부잣집 문 앞에 가서 밥을 구걸(求乞)했다. 찢어진 옷에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뺨에 뼈가 튀어 나올 정도로 마른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지팡이에 의지(依支)해 걷는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참담(慘憺)하다.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