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식민지가 끝내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던 결정적 분기점.


조선 식민지가 끝내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던 결정적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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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민지 통화정책의 차별



일본은 1909년 조선 은행을 설립하고 중앙은행 업무를 담당하게 했음.

사실 이때쯤 식민지로 전락했던 국가 대부분은 지도층들이 화폐경제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화폐가 남발되는 경향이 있었고 물가가 고무줄마냥 널뛰는 경우가 잦았음.


만약 이 상황에서 일본이 조선 식민지에도 일본 엔을 공식 통화로 지정했다면 이런 혼란을 막고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했을수도 있음.

그러나 일본은 1904년에 화폐개혁을 단 4일만에 전광석화로 처리해서 조선 내에 유통되던 백동화를 다 무효화 시켜버리고


조선은행의 설립을 주도한 아라이 겐타로는 "조선 경제가 안정되지 않았고, 만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유사시에 취약하다"라는 점을 근거로 일본은행권 유통을 막아버림. 조선은행이 독립적인 화폐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면 그나마 상황이 나았을텐데

그조차도 아니였음.

그 대가로 조선 식민지는 식민지 시절 내내 널뛰는 인플레와 디플레를 겪어야 했음.

35년동안 20% 수준의 인플레를 6번, -20% 수준의 디플레를 2번이나 겪는 역사상 유례없는 미친 물가의 나라가 되었음.

그 과정에서 현물 위주로 사업을 확장한 지주, 농산물 관련 기업가들만 살아남고 상업,공업 자본가들은 대부분 몰락해버림.

근대화의 시작은 상업과 공업의 발달로 말미암은 자본축적인데 조선 식민지는 미친년 널뛰기하듯 일어나는 인플레와 디플레때문에 자본축적의 기회를 놓치게 됨.

쉽게 요약하자면

우리가 미국 식민지가 됐는데 월급은 달러가 아니라 원으로 준다고?

하는 상황

2. 쌀 수입 통제

(쌀 소동으로 불타 버린 스즈키 상점 고베시 본사사옥.)

대공황이 닥치자 농민표를 의식해 조선 식민지의 쌀수입을 차단해버림.

이 포인트에서부터 일제가 조선을 진심으로 성장시킬 생각은 ㅈ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

이 여파로 조선 내 쌀값은 1925년 기준 석당 19엔 26전에서 1931년에 6엔 61전 수준으로 절반도 안되는 수준으로 폭락함.

대일수출의 50%가 쌀이였던 조선은 그야말로 치명타를 맞음.

그 여파로 조선의 농촌경제가 반대급부로 박살나서 지주한테 땅을 뺏기고 화전민으로 전략한 몰락 농민들이 대거 양성됐고

소작쟁의도 이 시점을 기해서 폭발적으로 늘어남.

일본이 전시경제로 전환하게 된 태평양전쟁 직전까지 조선인의 평균 실질임금은 식민지 초기수준에서 놀게 되었음.

소수의 지주가 전국토를 독점하고 높은 지대로 농민들을 착취하는 착취 경제 체제로 악화 된 것.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토지개혁을 하기 전까진 전 국토의 90%를 10명이 갖고 있다는 조소까지 나왔을 정도....

그렇다고 전시경제 체제로 인한 성장의 득실도 보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닌게

앞서 말한 조선은행이 패전 후 에라 모르겠다 ㅅㅂ 하고 시원하게 짐바브웨 마냥 조선엔 마구 찍고 튀어버려서

물가는 3000% 뛰어오르고 그나마 남아있던 민족자본가들마저 박살나서 다시

전국민이 지주 밑에서 소작이나 하며 평생 사는 경제구조로 환원되버림 ㅋㅋ

"병신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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